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궁과 월지 (문단 편집) === 훨씬 넓은 궁궐이었을 가능성 === 월지 동북쪽에서는 현재 [[경주 동궁 출토 신라 수세식 화장실|수세식 화장실]]과 여러 대형 건물, 유물들이 대규모로 출토되고 있어서 동궁의 중심지가 월지 호수 서쪽이 아닌 북쪽일 가능성도 생겨나고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주 월성 주변 항공 사진.png|width=100%]]}}} || || {{{#fbe673 '''경주 월성 주변 항공 사진'''}}} || 그리고 월지 호수 북동쪽은 바로 [[황룡사]] 부지와 쭉 이어진다. 동궁이 월지 북동쪽까지 뻗어 있었다면 자연스레 [[황룡사]]와 [[동궁]]이 연결되어{'''[[남궁]] ↔ [[경주 월성]] ↔ [[동궁과 월지]] ↔ [[황룡사]]''' }와 같이 신라 왕실과 관련된 궁궐과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여러 설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특히나 신라 왕실과 관련된 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81m의 거대한 9층 목탑으로 세간에 유명한 [[황룡사]]는 본래 신라의 왕실 사찰이라는 점이나 신라에서 [[국교]]와 같았던 불교의 위상을 감안하면 왕궁의 일부와 같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고[* 실제로 삼국사기에서도 원래 궁전으로 만들 것을 공사 도중 사찰로 용도변경했다고 한다.] 동궁이 예상외로 현재 알려진 범위보다 대규모로 위치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에 쓴 4개 왕궁 시설이 쭉 연담화[* 담이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군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되어 있었다고 가정하고 이를 하나의 궁역으로 계산하면 [[흥선대원군]]이 무리해서 크게 중건한 그 [[경복궁]]보다도 더 넓었고,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현재 남아 있는 고궁인 일본의 [[교토고쇼]]나 [[류큐 왕국]]의 [[슈리성]], [[베트남]]의 [[후에 황궁]]보다도 더욱 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까지 동궁의 발굴을 통해서 밝혀진 규모가 [[신라]]의 전성기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는 것은 이번 월지 북동쪽 발굴 조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1970년대에 발굴이 월지 서쪽과 월지를 중심으로 발굴한 것이지만 2017년부터의 발굴이 월지 북쪽을 중심으로 발굴한 것이기에 동궁의 각종 [[중앙관청|궐내각사]]와 [[침실|침전]], [[화장실]], [[창고]]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현재 [[네이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동궁 서쪽과 남쪽은 현재 '원화로'로 인하여 끊겨 있고, 동쪽과 북쪽은 동해선 철도로 끊겨 있다. 사방이 막혀 있어 아직까지 발굴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일부 학자들은 북쪽과 동쪽에서의 발굴을 통해서 역사와 기록 속의 전각들과 유물들이 추가로 출토될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